마리사를 업고

마리사는 긴 시간을 함께해 온 기타의 이름이다. 9년? 10년? 그 이상? 모르겠다. 타카미네社의 드레드넛으로, 헤드가 부러진 적이 있고 상판에 구멍 뚫린 적이 있다. 21년도에 이르러 룸메이트와 헤어지며 고맙게도 넘겨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본래 내 기타가 아니었고, 이름도 내가 붙인 게 아니며, 룸메이트의 기타를 갖다가 뻔뻔스럽게 치고 다녔던 것이다.

이제 명목상으로도 내 기타가 된 셈이지만 내 기타라는 느낌은 여전히 조금도 없다. 아마 계속 없을 것이다. 목사가 회당의 의자를 자신의 것이라 여길 수 없듯 내게 마리사는 악기라기보다는 토템, 성상, 신줏단지, 사타니스트인 여섯 번째 룸메이트의 물질화되어 보존된 영혼... 등등의 느낌을 준다. 내가 그를 새로운 집으로 업고 온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타고 새로운 집으로 온 것이다. 그가 속삭인 것이다. 나를 업고 가라... 나는 그의 책임관리인, 또는 운반자일 뿐이다. 나를 업고 가는구나?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는 것은 그냥 내 생각이다. 나는 언제까지고 마리사의 소유자가 아니다.

마리사는 울림이 좋다. 특유의 음색이 있다.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점이 내게는 더 중요하다: 마리사는 기타의 것이 아닌 소리를 낼 수 있다. 방에서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그것은 가끔 인간의 소리로 화음을 넣는다. 아니면 천사의 소리로... 그 화음은 아주 높이 있다. 한창 노래를 하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 것 같다. 그것은 혹시 마리사가 두드린 게 아닌가? 노래를 하는데... 갑자기 누가 소리를 친다. 어쩌면 마리사가 지나가다 소리를 친 게 아닌가? 내가 낸 적 없는 다른 소리가 내가 노래하는 중에 들린다면, 그것은 마리사가 냈다고밖엔 생각할 수 없다. 다른 것이 낸 소리일 리는 없다. 내가 방에서 너무 시끄럽게 굴어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거나 지나가다 소리를 치거나 그랬을 리가 없다. 하여튼 없는 것이다. 그 소리들이 환청이라면 마리사는 내 머릿속에 있다.

밖에서 마리사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는 어떨까? 뭔가가 시야 밖에서 휙 하고 지나간다. 마리사가 지나간 게 아닌가?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뭔가가 저편 어둠 속에 앉아서 듣고 있다. 혹시 마리사가 저곳에서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곳엔 아무것도 없으며, 기타는 여전히 나한테 매달려 있다.) 이러한 감각의 혼란들은 그저 뇌의 ○두엽이니 △두엽이니 하는 부분들의 과활성 탓일 테다. 그러니까 무슨 과활성화가 문제가 아니고, 거기에 자꾸 무서운 농담을 부여해주고 싶은 생각이 문제일지 모른다. 또는 이런 농담을 무섭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아니면 무서운 농담을 좋아하는 것이. 이런 일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 세상엔 더 무서운 일들이 많다. 그에 비하면 우스운 일이다. 이사하고서는 사정상 기타를 많이 치지 못한다. 내가 마리사와 함께 미쳐가고 있었던 걸까? 마리사는 아니라고 한다... 마리사는 아니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