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내지도 재가 되지도 않는 기억

유한함보다 늦게 만든, 유한함의 앞 노래. 이어서 유한함을 들어도 된다. 우리의 (계급적) 이상은 무궁함에 대한 느낌이 아니라 종료된/종료될 것들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온다. 그래서 기억이 없다면 이상도 없는 것이며, 이상이 있는 한 기억도 가능하다. 그런가? 감각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은 영원이나 무한 같은 추상과 쉽게 이어지지만 실은 그 반대, 우리 계급은 영원할 거라 믿어지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신성은 변장한 미래의 기억, 예측이 던지는 그림자, 절대 잡을 수 없이 날아가는 것, 기억이 있는 한 전해 받으며, 주는 줄 모르고 가하는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생물은 세계의 기억이 고이는 오목인바, 인간이 그 위에 비친 반영으로서 이상의 표지, 영성의 운반자인 까닭도 그것이다. 우리가 나아가고 있다는 걸 끝내 믿기 어렵지만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우리와 구분되지 않던, 좋고 나쁜 것들의 수면으로부터, 너무 슬프게 넘쳐 버릴 때까지, 좋고 나쁜 기억들을 기억으로 갖고, 천벌 같은 단층 저편으로 가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