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4월 4일, 곡조와 리듬
사이드3에서 90분. 오래된 노래들을 불러 보았다. 그것들은 너무 슬펐고, 좀 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졌다. 이런 노래를 계속 듣기만 한다면 우울해지리라는 생각. 나로선 위기의 시기를 어떻게든 지내 보고자 열심히 불러댔던 노래들이지만, 어쩌면 '우울한' 노래들이란 게 다 그럴지도 모른다. 너는 죽어도 나는 살려고... 그렇게 생각되는 것은 슬프다. 노래 듣기와 부르기가 너무나 다른 일이라는 것은 슬프다. 내가 듣는 내 노래와 네가 듣는 내 노래가 또 다를 것이다. 몸이 두 개가 될 수 없음, 여기와 저기에 동시에 있을 수 없음이 슬픈 것과 같이... 들을 거냐 부를 거냐 하면 부르는 편이 거의 언제나 좋은데, 그래도 잘 부르는 이에게 공간이나 시간을 내어 주고 싶은 마음이 슬픈 것이다. 네가 나 대신. 너 대신 내가. 순서라는 게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슬픈 건 나쁜 게 아니어도. 아 슬프다! 그래서 비정함 없이는 노래도 할 수 없다. 우는 대신 노래를 한다는 건 비정한 마음 없이는 할 수 없다. 다른 소리를 대신하려는 것은. 곡조는 어떤 곡조건 철침으로 만든 숲 같은 것. 무슨 쾌활 유쾌한 노래건 노래 자체가 원래 비정한 것이다.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비정함도 없고... 비정이 어쩌고 하는 것은 요즘 북두의 권 클립 몇 개를 봤기 때문인 것 같다. 한편 리듬은 비정하지 않다. 리듬은 비정을 모른다! 리듬은 사용하는 것이다. 편안하거나 불편한 것이다. 흔들의자 같은 것이다. 짐 실린 수레 같은 것... 리듬이 없다면 노래가 어떻게 자신을 그칠까. 감기가 거의 나아서 나갔는데 이날의 무리로 다시 좀 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