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엉망진창 공산주의 예술론

이런 일들. 나는 모_최로서 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뛰어난 음악들이 이미 한 사람의 생애를 다 바쳐 듣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길게 만들어져 있다. 그 사이에 뭘 더하는 것은 나의 능력과 상상을 벗어나는 일이다. 어쩌면 다들 그런 듯도 하지만... 여하간 내가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 데에는 복잡한 이유가 없다. 내가 즐겁게 부를 수 있고 내가 만족스럽게 들을 만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달리 말해 나는 현재의 음악 양식 내에서 내가 만족할 만한, 내가 마음을 놓고 기댈 만한 정서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나는 연가를 원하는 게 아니고, 애가나 송가를 원하는 게 아니다. 나는 분명하게 민가를 원하고, 내게 제공되는 민가들의 (양질 양면에서의) 부족함에 분노했다. 그것이 전부다. 결국 내가 만든 노래는 혼자 듣고 부르기에 적절한 민가다.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이런 걸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누군가 듣고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고무적인 일이고, 이 일과 결정적인 상관은 없다. 공연 역시 재밌는 부분과 고통스런 부분이 있고, 그 이상의 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듣고 싶은 사람이 앞으로 나선다면 들려줄 수는 있다. 그러나 사실 거기에 나는 별 필요가 없고, 듣고 싶은 본인이 직접 부르는 편이 가장 좋을 것이며, 그래서 가사와 코드도 제공하고 있다. 내가 내 노래를 스스로 부르거나 듣는 일 외에 그것들을 데리고서 따로 하고 싶은 일들이란 모두 좀 덜떨어진(비전문가적인) 일들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교류하기를 원하는 부분은 노래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갖고서 내가 해대는 이런저런 장난질(지금 주절주절 쓰고 있는 이 글과 같은)들이다. 당연히, 음악을 하겠다면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음악은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고, 나는 음악의 현상태에 진입할 생각이 없다. 내 노래들은 결과물이 아니라 소재에 더 가깝다. 이것은 나만의 특별한 상태가 아니다. 이것은 보편적인 상태다. 즉, 이러한 상태에 대한 특정한 결심(태도)이 나의 결과물이다. 나는 그 점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이 일들이 그저 자기합리화이며 자기위안에 불과한가? 당연하다. 내게는 바로 그 일이 필요하고, 나는 그 일을 만든다. 이런 식이어도 하등 상관이 없으며 또 적극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내세우는 까닭은, 어차피 내가 나의 노래와 무관하게 노동자로서 생활을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 그 얘기를 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겨울철의 활동이다. 이야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