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예술, 정치에 대한 메모
아이돌은 댄서가 아니고 싱어가 아니다. 댄서와 싱어를 거느리고 있는 무엇이다. 아이돌은 아티스트가 아니다. 그보다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아이돌을 '뭔가를 만들어내는 무엇'이라 정의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한 회당을 만들어내는 무엇'이다. 아이돌은 예술에 앞서, 그리고 정치에 앞서 있었던 양식이다. 빛이 아이돌의 몸체에 떨어지고, 사람들이 아이돌을 바라보고 있는 그 공간에, 전쟁과 구분될 수 있는(또는 전쟁을 가능케 하는) 정치의 첫 번째 가능성이 있다. 아이돌이라는 양식은 정치와 예술을 나눌 필요가 없었던 시절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이어져 온 것처럼 보인다. 신정(神政)이 분리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핵심적인 내용을 정치에 반납한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정치가 실패할 때에 그것이 폭발적으로 귀환(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가?
영기(靈氣)는 복제될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매다가 개성(character)에게, 아이돌에게 깃들었다.
우리는 정치인을 아이돌로 만들려는 모든 시도들을 물론 규탄한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만약 '예술화하려는 정치'에 맞서 예술을 정치화하려는 이(즉, 공산주의자)가 있다면, 아이돌이 만들어내는 회당의 내외부에 충만한 것과 같은 종류의 집단적 감정이 예로부터 정치를 추동시켜 온 위력들 중 하나라는 점을 씁쓸하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계급도 우리 계급의 아이돌을 가져본 적이 있다. 아직도 몇 구의 아이돌을 유리관 속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대머리들, 노인들.
전후부터 1세계에는 최고급의 록커들이 있었다. 그들이 실제로 행한 것은 저항이 아니라 저항의 진압이었고, 그 효과는 어떤 로켓보다 더 뛰어났다. 록의 시대가 끝이 났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다.
소련의 패배는 소련 예술의 패배다.
오늘날 아이돌이라는 양식은 록커들과 팝스타들이 그러했듯 정치의 부속지로 기능하고 있다. 종교가 아직도 그러하듯이, 정치의 실패를 소화해 내기 위한 완충장치로 그들 역시 끝없이 소환되고 있다. 대중의 필요가 산업적 굴절을 지나며 점점 더 크게, 점점 더 무겁게 그들의 어깨에 부과된다. 우리는 아이돌을 '실패'시키려는, 아이돌에게 '인간적인(보편적인)' 귀함을 돌려주려는 모든 시도들을 언제나 강력하게 지지한다. 우리는 그들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말해야 한다는 데에 점점 더 크게 동의할 것이며, 사태는 점점 더 그렇게 되어 간다. 그들도 늙어 가기 때문에, 그들도 죽기 때문에.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점도 알고 있다.
아이돌 속에 우리 계급의 실패한 정치적 열망이 보관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로부터 우리가 열망을 찾아올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아이돌이 되려 들고 있다. 무엇을 통해서 이 일은 가능해지고 있는가? 예술 생산력의 막대한 발전을 통해서. 우리는 역사의 그 어느 순간보다도 손쉽게 쓰고, 찍고, 그리고, 상영한다. 무엇을 하면서? 노동을 하면서. 우리 계급은 쓰잘데없는 것들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 보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우리 속에 아주 파묻어 버릴 것이고, 확인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개성이라 생각했던, 거기서 거기인 것들을, 엉터리를. 우리는 서로라는 지옥을 점점 더 투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한가?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회당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만들고 있다. 예술은 최종 패배할 것이며, 우리가 이 지옥을 손에 넣을 것이다. 우리가 준비되었을 때에.
영기(靈氣)는 복제될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매다가 개성(character)에게, 아이돌에게 깃들었다.
우리는 정치인을 아이돌로 만들려는 모든 시도들을 물론 규탄한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만약 '예술화하려는 정치'에 맞서 예술을 정치화하려는 이(즉, 공산주의자)가 있다면, 아이돌이 만들어내는 회당의 내외부에 충만한 것과 같은 종류의 집단적 감정이 예로부터 정치를 추동시켜 온 위력들 중 하나라는 점을 씁쓸하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계급도 우리 계급의 아이돌을 가져본 적이 있다. 아직도 몇 구의 아이돌을 유리관 속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대머리들, 노인들.
전후부터 1세계에는 최고급의 록커들이 있었다. 그들이 실제로 행한 것은 저항이 아니라 저항의 진압이었고, 그 효과는 어떤 로켓보다 더 뛰어났다. 록의 시대가 끝이 났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다.
소련의 패배는 소련 예술의 패배다.
오늘날 아이돌이라는 양식은 록커들과 팝스타들이 그러했듯 정치의 부속지로 기능하고 있다. 종교가 아직도 그러하듯이, 정치의 실패를 소화해 내기 위한 완충장치로 그들 역시 끝없이 소환되고 있다. 대중의 필요가 산업적 굴절을 지나며 점점 더 크게, 점점 더 무겁게 그들의 어깨에 부과된다. 우리는 아이돌을 '실패'시키려는, 아이돌에게 '인간적인(보편적인)' 귀함을 돌려주려는 모든 시도들을 언제나 강력하게 지지한다. 우리는 그들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말해야 한다는 데에 점점 더 크게 동의할 것이며, 사태는 점점 더 그렇게 되어 간다. 그들도 늙어 가기 때문에, 그들도 죽기 때문에.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점도 알고 있다.
아이돌 속에 우리 계급의 실패한 정치적 열망이 보관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로부터 우리가 열망을 찾아올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아이돌이 되려 들고 있다. 무엇을 통해서 이 일은 가능해지고 있는가? 예술 생산력의 막대한 발전을 통해서. 우리는 역사의 그 어느 순간보다도 손쉽게 쓰고, 찍고, 그리고, 상영한다. 무엇을 하면서? 노동을 하면서. 우리 계급은 쓰잘데없는 것들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 보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우리 속에 아주 파묻어 버릴 것이고, 확인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개성이라 생각했던, 거기서 거기인 것들을, 엉터리를. 우리는 서로라는 지옥을 점점 더 투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한가?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회당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만들고 있다. 예술은 최종 패배할 것이며, 우리가 이 지옥을 손에 넣을 것이다. 우리가 준비되었을 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