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5월 5일, 얼굴이라는 반향



사이드3에서 90분. 아직도 공사중이었다. 아래편 다리 기둥 뒤에 의자 두 개가 놓여 있기에 기타 케이스와 함께 앉아서(좀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쳤다. 케이스... 그 케이스는 따로 만 원에 산 것이다. 배지를 많이 달아 놓았던 때에는 거의 살아 있는(그래서 어디 앉혀 둘 수도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 피부가 있고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 내부가 있다면... 지금은 모_최로 활동하며 얻은 배지만 남기고 다 떼어 다른 곳에 옮겼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소리가 울리는 곳에서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울린다(반향)는 것은 무엇일까? 성산로 난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그런 얼굴들을 보면서는 울린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들이 내 앞에 와 있고, 함부로 떠나지 않는다면. 듣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란 분명 보기 좋은 편이지만, 그러나 역시 얼굴 같은 것은 받고 싶지 않다. 그것은 좀 실례가 되는 교환이다. 기회가 된다면 듣고 있는 여러분의 얼굴을 거울로 보라고, 그것은 보기에 너무나 좋은 것이며, 나는 그런 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얼굴보다 좋아하는 것은 뒷모습이다. 그것은 여러분의 얼굴보다 아름답고, 나는 그것을 받을 수 있다. 듣고 있는 여러분의 뒷모습은 앞으로 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기타를 칠 때 사방이 트여 있으면 역설적으로 답답해지고 만다. 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보고/듣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에 그렇다. 그때에는 내가 내는 소리가 나에게 어떤 표정으로도 형상으로도 돌아오지 않고, 없는 사람의 귀와 눈 너머로 빠져나가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득함도 답답함도 나는 물론 좋아한다. 사방의 벽을 좋아하듯이. 더는 기타를 칠 수 없을 때까지 치고 난 뒤 케이스에 다시 넣을 때의 좋음에 대해서도 적어 둬야 할 것이다. 케이스의 내부에 다시 물체가 채워지며 앉아 있던 것의 영혼 또한 사라진다. 노래와 영혼은 서로에 대한 비유이고, 나는 드디어 피부를 얻은 기타를 업고서 방으로 돌아가 잔다. 그리고 이것들은 전부 方向感覺에 대한 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