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에 대한 생각 정리

밴드캠프 오늘(18/4/6)까지의 올타임 다운로드 통계는
『극좌성가대』 96
『평의회 이후』 95
「도스토옙스키」 52
『덮음』 45
「그날에 만물이 아주 잠깐 동안」 18
「모닥불의 끝」 12
「떨어지는 남자」 6
이다. 물물교환의 경우 『새와 드릴과 마리사』, 『망원』 및 『극좌성가대』 포함하여 총합 49회였다. 다른 건 몰라도 평의회 이후는 나라에서 이백 명 정도는 들어도 될 것 같은데...

현재 『새와 드릴과 마리사』, 『망원』을 구하려면 갖고 있는 사람한테 달라고 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예전 물물교환으로 배포할 때 사용과 공유에 제약이 없다고 적었는데 안 준다면 그 사람이 주기 싫다는 뜻이니 별수 없다. 일단 나는 갖고 있므로 나한테 달라 하시면 그냥 드린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이 얘기를 어디 제대로 적어 놓지 않은 것 같다. 공유는 그렇다 치고 음원 '사용'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한마디로 그걸 갖고 앨범을 만들어서 돈을 받고 팔아도 된다(누구도 그러고 싶진 않겠지만). 그대로 커버해서 앨범 발매(이런 건 감사할 일이다), 커버해서 저작권 등록하고 커버 아닌 척(이런 건 좀 문제가 있다), 다 상관없다. 나는 그런 일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바를 계속 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 나의 입장은 강경하다. 나는 내 노래를 동시대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에 맞춰 판매하려는 생각이 없다. 저작권이라는 틀에 어떤 식으로든 엮이고 싶지 않다거나 음원 수익 분배의 구조에 동의하지 않는다거나 이런저런 소리를 할 수도 있겠는데, 결국 말하려는 것은 내 노래를 듣고 싶은 사람은 아무런 금전적 제약 없이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무슨 음악-운동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그것이 이 취미를 위해 내가 세운 하나의 상징적인 철칙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공연비도 딱 만오천원만 받으면 된다. 주최자가 입장료 만 원씩 열 사람에게서 받았다고 해도 괜찮다. 나는 아쉬울 게 없다. 강령에서 밝힌 바대로 나는 모_최에 앞서 노동자이고, 모_최는 노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취미들 중 하나다. 이 입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

위와 별개로 실물 앨범을 만들지 않는 까닭은 투입해야 할 노력의 규모가 달라지는 데 비하여 스스로 전혀 그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CD-문화라는 것을 이해하는 세대(또는 계급)가 아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노래를 듣고 소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래가 교환의 대상이 되는 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닌데, 설령 취미라 할지라도 모종의 '교환' 없이는 지속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예전의 물물교환이 내게(그리고 청자에게도) 상당한 동력이 되었다는 점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 청자의 중요함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자 또한 내게 뭔가를 건넬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 나는 그 교환이 어지간하면 돈을 매개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 교환이 정도 이상으로 '공적'일 필요가 있다는 결론 또한 얻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는 방송이나 후원이라는 방식도 고민해보고 있다. 지역화폐까지도...

새 모음집은 4.30 배포를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