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문예로서의)야마가타 트윅스터에 대한 메모
내가 사랑하는 민중엔터테이너 야마가타 트윅스터(이하 YT)에 대해 메모한다.
한받은 생활-예술-집행-투쟁의 4방향 압박 속으로 뛰어든다.
생활은 무산계급으로서 받는 노동의 압박이다.
예술은 더 좋은 생산물을 향한 생산물 내용상의 압박이다.
집행은 생산물의 시연과 사용에 관한 압박이다.
투쟁은 연대를 통해 세계의 변혁을 꾀하는 운동의 압박이다.
한받은 생활과 예술, 집행뿐 아니라 투쟁을 자신의 영역으로 가져오고자 한다. 그가 겪는 곤란은 다른 모든 좌파문예가 겪는 곤란과도 같다. 하지만 한받의 독보적인 뛰어남은 예술-투쟁 축에 관성적으로 머무르는 다른 저수준의 것들과 달리, 생활-집행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고민과 실천으로 나아간다는 데에 있다. 투쟁이라는 축을 예술뿐 아니라 다른 축들과도 긴장시키는 것은 예술활동 자체에 대한 재정의를 반드시 불러일으킨다. 나는 바로 그 재정의가 좌파문예의 본질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좌파문예는 자신의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다뤄야만 한다. 그것은 곧 예술 활동이란, 예술 자체의 내적인 형식뿐만 아니라 그 생산자의 존재형식(생활)과 생산물의 사용형식(집행)에 대한 의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의식을 예술 생산물 자체의 내적 논리로 다시 공급해야 한다는 것까지를 이른다. 그것은 하나의 총체적인 형상 주조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다. 한받은 YT라는 주체를 내세워 생활-예술-집행-투쟁의 4방향을 묶으려 한다. 민중엔터테이너라는 이름으로. 그것은 민중을 엔터테이닝한다는 뜻인 동시에, 엔터테이너인 민중을 의미한다. 민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의 현상태에 대하여 투쟁하고 있는 집합적 인격이다. YT를 통해 제시되는 것은 좌파의 예술로서의 주체이고, 앞으로 예술이 맞게 될 운명에 대한 예언이다. 나는 YT보다 앞으로 나아간 그 어떤 좌파문예도 알지 못한다. YT는 행렬의 맨 뒤에 있는데, 그것은 미래로부터의 행렬이다. YT는 하나의 뛰어난 시연(demo)이다. 좌파문예의 머나먼 성립을 목표로 하는 뭇 사람들이 그를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받은 생활-예술-집행-투쟁의 4방향 압박 속으로 뛰어든다.
생활은 무산계급으로서 받는 노동의 압박이다.
예술은 더 좋은 생산물을 향한 생산물 내용상의 압박이다.
집행은 생산물의 시연과 사용에 관한 압박이다.
투쟁은 연대를 통해 세계의 변혁을 꾀하는 운동의 압박이다.
한받은 생활과 예술, 집행뿐 아니라 투쟁을 자신의 영역으로 가져오고자 한다. 그가 겪는 곤란은 다른 모든 좌파문예가 겪는 곤란과도 같다. 하지만 한받의 독보적인 뛰어남은 예술-투쟁 축에 관성적으로 머무르는 다른 저수준의 것들과 달리, 생활-집행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고민과 실천으로 나아간다는 데에 있다. 투쟁이라는 축을 예술뿐 아니라 다른 축들과도 긴장시키는 것은 예술활동 자체에 대한 재정의를 반드시 불러일으킨다. 나는 바로 그 재정의가 좌파문예의 본질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좌파문예는 자신의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다뤄야만 한다. 그것은 곧 예술 활동이란, 예술 자체의 내적인 형식뿐만 아니라 그 생산자의 존재형식(생활)과 생산물의 사용형식(집행)에 대한 의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의식을 예술 생산물 자체의 내적 논리로 다시 공급해야 한다는 것까지를 이른다. 그것은 하나의 총체적인 형상 주조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다. 한받은 YT라는 주체를 내세워 생활-예술-집행-투쟁의 4방향을 묶으려 한다. 민중엔터테이너라는 이름으로. 그것은 민중을 엔터테이닝한다는 뜻인 동시에, 엔터테이너인 민중을 의미한다. 민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의 현상태에 대하여 투쟁하고 있는 집합적 인격이다. YT를 통해 제시되는 것은 좌파의 예술로서의 주체이고, 앞으로 예술이 맞게 될 운명에 대한 예언이다. 나는 YT보다 앞으로 나아간 그 어떤 좌파문예도 알지 못한다. YT는 행렬의 맨 뒤에 있는데, 그것은 미래로부터의 행렬이다. YT는 하나의 뛰어난 시연(demo)이다. 좌파문예의 머나먼 성립을 목표로 하는 뭇 사람들이 그를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