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5월 21일 일요일, 어두워지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한강변에서 70여 분. 이번에도 위치 문제가 있었다. 내가 보기엔 방도가 없다. 이게 원래 이런 형식이라고까지 생각된다. 청자를 피해 도망을 다니면서 부르는 노래인 셈이다. 민원도 백번 이해한다. 한강변 풀밭에 앉아서 들어줄 만한 노래가 아니고, 어디에 앉아 있든 불시에 들을 만한 노래가 아니다. 나라도 갑자기 듣게 된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앞에 두고 혼자 부르고 있으면 외롭고... 스트레스가 좀 생긴다. 나는 대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물론 든다.
이번처럼 감사하게도 공연이 될 때는, 때마다 조금씩 다른 시도를 해보고 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일어나서 해봤다. 밖에서 혼자 부를 때 일어나서 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앉아서 하는 것만큼이나 수치스러웠다. 수치감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계속해서, 마지막 공연보다는 잘 부르고 있다고 스스로 여기고(자기기만) 있다. 사람들 앞에서도 혼자 부를 때 정도의 퍼포먼스를 내는 것이 소박한 목표다. 청자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그 비슷하게라도. 어쨌든 혼자 부를 때의 노래에 점점 근접하고 있다. 듣기에는 점점 더 안 좋은 소리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귀를 떼어 내 앞에 놓을 수가 없으니 안타깝다.
전에도 그랬지만, 어두워지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나아졌다. 그러고 보면 혼자가 어쩌고 청자가 어쩌고 하는 건 다르게 접근해 볼 수도 있다. 나는 단순히 청자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고, 청자들이 내 얼굴을 보는 것이 싫은 게 아닌가? 그것은 일단 분명한데, 그게 그저 싫다고 해 버리기엔 좀 묘한, 어떤... 펑크적인 재미가 있기야 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어쨌든 무대-객석 체계는 내가 수긍하고 싶은 형식이 아니다. 나는 청자를 등지거나 청자의 등 뒤에서 부르는 편을 훨씬 선호한다. 몇 번이고 말할 수 있는데, 그 편이 몇 배는 더 좋다. 내가 청자를 등지면 소리가 잘 안 들릴 테니까 청자들이 돌아앉는 게 더 낫다. 하여튼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한다고 그렇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뭔 고집을 부릴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언젠가 실내에서 하게 된다면 무조건 전기 없이 어둡게 하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멘트는 그냥 별 준비도 없이 횡설수설했다. 멘트 같은 건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아무렇게나 말하면 듣기에 안 좋을 텐데 말이다. 죄송스런 맘이 들었다. 다음(이 있다면)엔 무슨 사회 현안 같은 것에 대해 간략히 말해 볼까?
이번처럼 감사하게도 공연이 될 때는, 때마다 조금씩 다른 시도를 해보고 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일어나서 해봤다. 밖에서 혼자 부를 때 일어나서 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앉아서 하는 것만큼이나 수치스러웠다. 수치감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계속해서, 마지막 공연보다는 잘 부르고 있다고 스스로 여기고(자기기만) 있다. 사람들 앞에서도 혼자 부를 때 정도의 퍼포먼스를 내는 것이 소박한 목표다. 청자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그 비슷하게라도. 어쨌든 혼자 부를 때의 노래에 점점 근접하고 있다. 듣기에는 점점 더 안 좋은 소리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귀를 떼어 내 앞에 놓을 수가 없으니 안타깝다.
전에도 그랬지만, 어두워지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나아졌다. 그러고 보면 혼자가 어쩌고 청자가 어쩌고 하는 건 다르게 접근해 볼 수도 있다. 나는 단순히 청자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고, 청자들이 내 얼굴을 보는 것이 싫은 게 아닌가? 그것은 일단 분명한데, 그게 그저 싫다고 해 버리기엔 좀 묘한, 어떤... 펑크적인 재미가 있기야 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어쨌든 무대-객석 체계는 내가 수긍하고 싶은 형식이 아니다. 나는 청자를 등지거나 청자의 등 뒤에서 부르는 편을 훨씬 선호한다. 몇 번이고 말할 수 있는데, 그 편이 몇 배는 더 좋다. 내가 청자를 등지면 소리가 잘 안 들릴 테니까 청자들이 돌아앉는 게 더 낫다. 하여튼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한다고 그렇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뭔 고집을 부릴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언젠가 실내에서 하게 된다면 무조건 전기 없이 어둡게 하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멘트는 그냥 별 준비도 없이 횡설수설했다. 멘트 같은 건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아무렇게나 말하면 듣기에 안 좋을 텐데 말이다. 죄송스런 맘이 들었다. 다음(이 있다면)엔 무슨 사회 현안 같은 것에 대해 간략히 말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