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3월 12일 일요일, 노래가 고정되는 순간

아주 오랜만에 사이드3에서 50분. 오랜만이라 힘이 너무 들어간 탓이었는지 오래 안 불러 힘을 잃은 탓이었는지 공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맥주를 좀 마셨기 때문이었는지 아주 쉽게 지쳐 버렸다. 새 노래를 처음으로 크게 불러보았다. 쉽지 않았다. 지하도...도 오랜만에 불러봤는데 첫 두 마디가 새 노래로 덮어쓰기 되어 버려 원래 가락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새 가락이 더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음들의 고저차가 전보다 더 크기 때문일까? 한편 가사가 완전히 다른 다른 부분들은 또 또렷하게 기억이 난 것으로 보아, 노래를 노래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문장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가사가 다른 노래를 곧장 낳는 것은 아니니, 가락과 가사가 서로에게 종속되어 있지만 서로를 자동으로 끌고 가진 않음을 확인한 셈이다. 이로부터 노래의 변화한계점, 노래가 고정되는 순간을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고정된 노래는 자신의 저편에 자신과 달라야만 하는 노래가 나타날 때, 바로 그러한 구분선의 '폭력적' 도입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구분선은 지형이 될 수도, 나라나 가수가 될 수도, 전쟁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곧, 노래는 식별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고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작권이란 바로 그 구분선의 법적 도입이다. 좌파의 노래들은 노래의 자유로운 교통을 막는 바로 그것에 본능적으로 의식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어떤 쓰레기 같은 결과를 내든 간에 말이다. 일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