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수요일, 옛날에 만든 노래를 옛날에 불렀던 것처럼
퇴근 후 11시부터 사이드3에서 60분? 70분? 공기가 부쩍 건조해졌다. 계절이 바뀌면 목소리도 바뀌고 들리기도 달리 들린다. 기타 소리는 대체로 좋아진다. 음향에는 공기의 상태-습도, 기압, 온도, 움직임-가 크게 관여한다. 결국에는 공기를 재료로 하는 일이라고 새삼 생각. 아닌가? 공기라는 매체와 공간이라는 조건을 다루는 밀리미터 단위의 신체 통제... 어디까지를 통제 가능한 것으로 둘 것이고 어디까지를 대처해야 하는 것으로 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 나는 통제하려는 영역을 굉장히 좁게 잡고 있다. 같은 목소리일 필요가 없고, 같은 가락과 구성일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가사(와 스케일?)가 중요한 닻이다. 새로운 노래를 만들게 하는 것은 결국 새로운 가사의 필요(다른 무엇보다 일단 가사에 질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먼저 나오게 되는 것은 진행과 가락이다.
옛날에 만든 노래를 옛날에 불렀던 것처럼 불렀다. 나의... 창법이랄 것은 지난 몇 해에 걸쳐 강의실-방-야외를 거치며 계속 바뀌고 있다. 나이도 먹고 있고. 부르다 보면 이건 엄청 흉하게 들리지 않을까, 이건 괜찮게 들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알 수는 없다. 결국은 내게 좋게 들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취급된다. 판단 가능함이라는 측면에서. 나는 판단을 하고 싶고, 결국 내가 판단해서 하는 수밖에 없다. 듣기와 소리 내기를 동시에 하는 일에는 특유의 재미가 있다. 목표와 행동과 결과 확인이 즉시 이루어진다는 점, 또한 그 과정에서 공간을 분명히 점유한다는 점. 보통은 나 자신이 내는 소리에 이 정도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을 일종의 도취라고 해도 뭐라 할 말은 없다. 자기충족적인 권력욕? 쓰는 일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다. 일단 지금은 이런 느낌으로 가고 싶다. 듣는 나와 소리 내는 내가 지나치게 가깝고 친한데, 그 협업의 결과물들이 물질의 형태로 정리(졸업)되지도 않는다는 것. 내가 이런 방식을 고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결국 나는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아니... 사실 이유는 찾아냈고 문제는 이유에 형식를 부여하는 고안이다. 아니... 그러한 고안이 없는 한 실은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뭐라도 하자. 해 보면 안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을 보니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다.
최근에는 이랑의 2집을 샀다. 그 방식은 재밌긴 해도 적절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남이 해봐서 다행이다. 그러나 적절함... 무슨 적절함?
강력한 반복이 이루어지는 와중(대량의 반복)에는, 조건의 아주 작은 변화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차이 만들기를 반복하면서는 어떠한가? 그런 것은 쓸 필요 없다. 이 기록은 지우고 싶다.
옛날에 만든 노래를 옛날에 불렀던 것처럼 불렀다. 나의... 창법이랄 것은 지난 몇 해에 걸쳐 강의실-방-야외를 거치며 계속 바뀌고 있다. 나이도 먹고 있고. 부르다 보면 이건 엄청 흉하게 들리지 않을까, 이건 괜찮게 들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알 수는 없다. 결국은 내게 좋게 들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취급된다. 판단 가능함이라는 측면에서. 나는 판단을 하고 싶고, 결국 내가 판단해서 하는 수밖에 없다. 듣기와 소리 내기를 동시에 하는 일에는 특유의 재미가 있다. 목표와 행동과 결과 확인이 즉시 이루어진다는 점, 또한 그 과정에서 공간을 분명히 점유한다는 점. 보통은 나 자신이 내는 소리에 이 정도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을 일종의 도취라고 해도 뭐라 할 말은 없다. 자기충족적인 권력욕? 쓰는 일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다. 일단 지금은 이런 느낌으로 가고 싶다. 듣는 나와 소리 내는 내가 지나치게 가깝고 친한데, 그 협업의 결과물들이 물질의 형태로 정리(졸업)되지도 않는다는 것. 내가 이런 방식을 고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결국 나는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아니... 사실 이유는 찾아냈고 문제는 이유에 형식를 부여하는 고안이다. 아니... 그러한 고안이 없는 한 실은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뭐라도 하자. 해 보면 안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을 보니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다.
최근에는 이랑의 2집을 샀다. 그 방식은 재밌긴 해도 적절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남이 해봐서 다행이다. 그러나 적절함... 무슨 적절함?
강력한 반복이 이루어지는 와중(대량의 반복)에는, 조건의 아주 작은 변화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차이 만들기를 반복하면서는 어떠한가? 그런 것은 쓸 필요 없다. 이 기록은 지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