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음악에 대한 메모2 (21 Jun 2010)
글은 반드시 어떤 것들이 부서진 위에 세워진다고 생각된다. 글이라는 형식 자체가 파괴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파괴를 통해 구동되고 향유된다. 쓰는 일이란 어쨌든 언어의 일이고, 영혼의 실체는 결국 언어의 체계라고 믿는 내게 쓰는 일이란 세련된 방식이든 조악한 방식이든 파괴에 관심을 갖고 있든 없든 간에 독자의 영혼을 향해 어떤 방식으로인가 쳐들어가는 일이며, 파괴를 목적하는 일이다. 형식의 의무적인 파괴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형식의 파괴는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쓰는 일과 영혼에 대한 사유 뒤에 반드시 일어나고 만다.
하지만 음악은 반드시 새로워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파괴와는 별 관련이 없다. 좋은 글은 반드시 파괴적이지만, 좋은 음악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그 점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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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는, 청자에 대해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좋은 음악이 청자의 시간과 역사적 시간을 분명히 파괴한다는 말엔 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이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충격을 준다는 것은, 쓰는 이의 미는 힘과 독자의 막는 힘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쇄의 충격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 파괴되는 쪽은 글 자신이다. 그렇다면 형식상의 파괴는 쓰는 이가 쓰는 이이자 독자로서 동시에 기능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쓰는 일 자체가 쓰는 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그 경우에는, 쓰는 일이 쓰는 이의 언어-공간과 그 글이 쓰이고 있는 역사-공간을 파괴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음악을 듣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이 이 점에서 비슷하다면, 글을 읽는 일과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은 어떤 점에서 비슷한가?
하지만 음악은 반드시 새로워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파괴와는 별 관련이 없다. 좋은 글은 반드시 파괴적이지만, 좋은 음악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그 점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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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는, 청자에 대해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좋은 음악이 청자의 시간과 역사적 시간을 분명히 파괴한다는 말엔 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이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충격을 준다는 것은, 쓰는 이의 미는 힘과 독자의 막는 힘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쇄의 충격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 파괴되는 쪽은 글 자신이다. 그렇다면 형식상의 파괴는 쓰는 이가 쓰는 이이자 독자로서 동시에 기능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쓰는 일 자체가 쓰는 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그 경우에는, 쓰는 일이 쓰는 이의 언어-공간과 그 글이 쓰이고 있는 역사-공간을 파괴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음악을 듣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이 이 점에서 비슷하다면, 글을 읽는 일과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은 어떤 점에서 비슷한가?